백야행 BOOK

[스포일러 있음.]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이자, 가장 뛰어난 수작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인데 상당히 늦은 시점에 읽게 되었다. 19년 전에 발생한 미제사건을 추적하는 사사카키 형사와 그가 사건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여성, 니시모토 유키호.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그림자인 키리하라 료지, 크게 보면 이 3인 구도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주인공들의 유년시절부터 학창시절, 그리고 성년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일대기에 가깝게 그리고 있어 상당히 방대한 분량이었다. 서로 사랑에 빠진 료지와 유키호, 하지만 료지의 아버지는 가난한 유키호의 어머니에게 돈을 대주면서 딸인 유키호를 성추행하고 있었고, 이를 목격한 료지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만다. 한편, 유키호는 자신을 판 어머니를 가스사고로 위장하여 죽이고, 먼 친척에게 입양되어 그토록 갈망하던 가난에서 벗어난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자신을 비극의 여인으로 포장하기 위해 양어머니마저 살해하고, 이 모든 살인에는 료지가 관련되어 있었다. 유키호를 위해 모든 것을 료지가 희생하고 유키호는 그것을 당연한듯이 받아들이고, 결국 료지는 끝까지 유키호를 지키고 자신과의 인연을 감춘 채 숨을 거둔다. 

'백야행'은 7~90년대 일본의 사회상을 잘 묘사하고 있고, 시대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장치가 많았다. 그와 함께 아동 성폭력과 가족의 해체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스릴러를 통해 묘사하고 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료지와 유키호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했다는 점에서 세상의 어두운 단면을 잘 그리고 있었다. 료지와 유키호의 관계는 단순히 '사랑'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편부 아래에서 자란 둘의 동질감과 아버지의 행위에 대한 속죄, 연민 등... 여러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섞인 마음이리라. 또 '살인'이라는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그 둘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될 수 있었고, 각자의 생활을 갖되 둘 사이에는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벽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밝혀주는 빛과 같은 존재였던 것만은 확실했으리라. 하지만 어둠을 공유하는 한, 두 사람이 함께 빛으로 나올 순 없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료지는 자신의 잘못과 유키호의 잘못까지 모두 떠안고 죽음을 선택했을테고. 개인적으로 료지의 죽음보다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유키호의 모든 어둠을 떠안은, 부제처럼 하얀 어둠 속을 걸은 그의 인생이 안타까웠다. 유년기를 제외하면 료지와 유키호의 대면은 단 한차례도 나오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더욱 애잔했던 것 같다. 

2009년 한국에서 만들어진 영화판은 못봤지만, 십수 년에 걸친 3권짜리의 장편을 한 편의 영화로 표현하긴 힘들었을 것 같다. 원작과 달리 로맨스가 강조되었다고 들었는데, 감성적인 시각에서 보면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이지만 앞서 언급했듯, 료지와 유키호의 관계는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조금 무리수를 두지 않았나 싶다. 반면, 일본에서 제작된 드라마 판은 상당한 호평을 받던데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감상하고 싶다. 어쨌든 극 중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잘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자 장점인데, 담담하게 인물들의 행위만 묘사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더 슬프게 작용했던 것 같다. 모든 비밀과 상처, 료지의 죽음까지 안고 빛 속에서 살아갈 유키호는 과연 행복했을까?

P.S
내 위에는 태양 같은 건 없었어.
언제나 밤. 하지만 어둡진 않았어. 태양을 대신하는 것이 있었으니까.
태양만큼 밝지는 않지만, 내게는 충분했지.
나는 그 빛으로 인해 밤을 낮이라 생각하고 살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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