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수 (2013) MOVIE

[스포일러 있음.]



2013년 11월 28일 관람.
굳이 관련 정보를 찾아보지 않아도 포스터만으로 줄거리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슬플 창(愴), 목숨 수(壽)라는 타이틀과 누군가에게 머리채를 쥐어잡힌 임창정이 담긴 포스터에서 받은 첫 인상은 적당히 폭력적이고, 식상한 억지감동을 유발할 것 같은 영화였다. 하지만 '창수'를 연출한 이덕희 감독이 '파이란'에 조감독으로 참여한 경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내 예상이 틀리길 기대했다.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두사부일체'(조감독)도 있었지만 후속작들과 달리 1편은 아주 못 볼 영화도 아니었고, 그보다 '파이란'의 그것에 대한 기대가 커서였는지 다른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랬는데...

뻔한 이야기
징역살이 대행업자라는 창수(=임창정)의 직업은 나름대로 참신했지만 거기까지였고 허세로 가득한 몸짓과 말투, 건달도 못되는 3류 양아치지만 속은 순박한 창수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았다. 마치 '비트'의 환규가 자란듯한 모습의 창수는 이미 익숙해질대로 소모된 캐릭터성으로 낯익다기보다는 고루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미연(=손은서)과의 짧지만 강렬한 로맨스, 피보다 진한 동생인 상태(=정성화)의 배신, 배후를 알 수 없는 조직과의 사투까지 온갖 클리셰로 점철되다 보니 이렇게 진행되도 되는가?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또 사람들이 극찬을 마지 않는 임창정의 연기에는 이견이 없지만 뭔가 와닿지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의 전작들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인데, 분명 성격이 다를 터인 '일번가의 기적'의 필제나 그의 대표곡 '소주 한잔'의 뮤직 비디오와 겹쳐 보이면서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을 고착시켰다. 마치 가스통에 맞아 피흘리는 유덕화의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창수'는 요즘 트렌드와는 거리가 먼, 그렇다고 복고를 노린 것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이었다.

부족한 개연성
고아로 태어나 밑바닥 인생을 살면서 세상의 비정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창수지만 이기심과 매정함만은 배우지 못했나 보다. 창수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단 하나의 무기는 허세인데, 생존을 위해 갑옷처럼 입은 허세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자기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기회가 미연과의 만남이었다... 라고 억지 의미를 부여해봐도 고작 이틀동안 함께 했을 뿐인 여자를 위해 목숨을 내던진다는 것은 역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미연의 분량을 늘려 애틋하고 애절한 로맨스를 보여줬다면 관객의 감정이입을 위한 시간적 여유도 마련하고 극적효과도 충분히 누렸을 것이다. 멜로에서 느와르로의 갑작스런 장르 전환도 전체적인 완성도 하락에 기여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미연의 뜬금없는 죽음은 이유가 명쾌히 설명되지 않았고, 그 누명을 창수가 뒤집어 쓰게 되는 부분의 묘사도 불충분했다. 도석(=안내상)이 조직을 접수하는 상황에서 발생할 것 같았던 알력다툼도 의미없는 기믹에 지나지 않았고, 중간과정을 생략한 채 혈혈단신으로 도석과 대면하는 창수의 행동도 납득가질 않았다. 아마 미연의 죽음이 도석과 관계되었다는걸 안 시점, 아니 그보다 앞서 미연이 죽은 시점에서 자신도 죽을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찌질하지만 우직한 수컷의 못난 순정을 너무 투박하게 그린 것이 가장 아쉬운 점이다.

신파극은 끝이다
결국 부족한 시나리오를 배우의 연기력으로 메꿀 수 밖에 없는 구조였는데,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으나 연출의 문제로 그조차도 여의치 않고 작위적인 느낌이다. 살해누명을 쓰고 수감된 창수에게 자신의 배신을 털어놓는 상태가 대표적인 예인데 소리없이 오열하는 정성화의 연기는 매우 훌륭했지만, 연출의 구조적 결함 때문인지 상황에 맞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또, 도석과의 위험한 도박을 마친 창수가 미연이 잠들어 있을 납골당(개정된 정식명칭은 봉안당)까지 어떻게 기어왔는지도 의문.(택시라도 탔나;;) 거기서 반지를 꺼낸 것까진 그래도 이해할 수 있었는데 반지가 굴러간 자리에 써있는 문구를 보곤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 장면에서 눈물을 보인 관객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건, 이 영화가 갈데까지 갔음을 반증하는 게 아니었을까. 결국 영화 '창수'는 허세만이 유일한 무기였던 주인공 창수처럼 신파라는 허세로 가득찬 영화였다. 작품은 제목따라 간다더니 슬플 창(愴), 목숨 수(壽)는 이 영화의 슬픈 운명이었음.본격 미래를 예견한 감독. 그나마 미연을 연기한 손은서의 매력이 유일한 수확이었다.

P.S
내가 여자 때리지 말랬잖아요... 벌 받잖아요, 이 십새끼야...

덧글

  • tms 2013/12/10 11:27 # 삭제 답글

    창수가 더더욱 기대 안되는 이유는 임창정이 공모자들에서 보여준 허접한 연기력입니다.
    되지도 않는 사투리 서울 사람들이 보면 우와 하겠지만 지방 사람들이 보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지요.
    (현역, 은퇴 배우 중에 사투리 완벽히 구사하는 배우는 진짜 몇 안됩니다. 손으로 꼽을 정도)

    임창정의 연기는 좀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공모자들에서도 최다니엘과 임창정이 영화를 완전 망쳐놨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구요, 그 전작 일번가의 기적은 글쎄요...진짜 이건 별 2개반에서 3개 정도의 너무너무 평범한 수준의 영화라..

    임창정은 차라리 가수를 계속 하는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아니면 좀 연기를 더 배우고, 좀 더 고생해서 오던가..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포지션인 느낌..게임으로 치면 공격력 센 캐릭터랑 방어력 센 캐릭터 사이의 공격력도 어중간해서 탱커로 써 먹기도 그렇고 방어력도 어중간해서 뎀딜러로 써먹기도 어중간하고, 마나, 정신력도 안되서 힐러로 써먹기도 어중간한 이도저도 아닌 캐릭터입니다...

    제대로 된 영화 볼려면 한 5년은 더 기다려야 겠네요.
  • NIZU 2013/12/10 17:24 #

    안녕하세요, tms 님. 먼저 방문 감사드립니다 :)
    '공모자들'은 보지 않았는데 배우들이 아쉬웠나보군요. 임창정의 연기 스타일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그가 연기한 대부분의 캐릭터가 비슷한 느낌을 준다는건 조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가수로서는 상당한 팬이어서 은퇴한다고 했을 때 많이 아쉬웠던 기억이 나네요. 다시 가수로 복귀하긴 했지만 예전만큼의 인기는 얻지 못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배우로서도 확고한 위치를 구축하지 못한 것 같아 말씀대로 어중간한 느낌을 저도 받았습니다ㅠ
  • 동사서독 2013/12/10 18:28 # 답글

    가스통 맞아 피흘리는 캐릭터는 장국영이 아니라 유덕화가 아닐까요? 한국제목 천장지구에서였나 오토바이에 웨딩드레스 입은 아가씨를 태우고 달아나는데 한바탕 싸움판에서 가스통에 뒤통수를 쎄게 맞은 호유증으로 코피가 계속 쏟아지는 캐릭터를 연기했었지요.
  • NIZU 2013/12/10 19:02 #

    안녕하세요, 동사서독 님. 방문 감사드립니다.
    가스통 부분은 '천장지구'에 관해 쓴 것이고 말씀하신대로 유덕화가 맞네요.
    저도 웨딩드레스를 입은 오천련을 오토바이에 태우고 달리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전 이걸 왜 장국영으로 기억하고 있었는지... 지적 감사드리고 해당 부분은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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