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내가 죽은 집 BOOK

[스포일러 있음.]



다작을 하는 작가라 기복은 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내 취향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이 책은 노골적이고도 직접적인 제목에 끌렸는데, 1인칭으로 이야기하는 죽음은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이라. 작중 화자인 '나'는 7년 전 헤어져 이제는 다른 남자의 부인이자,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사야카의 갑작스런 전화를 받게 된다. 사야카는 딸을 학대하는 자신의 문제가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기억에 있다고 생각하고, 첫사랑인 '나'와 헤어질 결심을 한 이유도 이 기억에 있다고 느껴 연락해 온 것이다. 아버지의 유품에서 나온 열쇠와 지도만으로 이들은 과거를 찾는 여행을 떠난다. 이윽고 아무도 살지 않는 별장에 도착하고 그녀의 기억을 하나씩 되찾아 간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기억나지 않는 것과 어릴 때의 기억이 없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기억이 없다는 것이 두려운 사야카는 그동안 신경쓰지 않고 살아왔지만 아이가 자라는 만큼 자신이 상실한 기억에 관한 궁금증이 커졌고, 그 기억만 알게 된다면 자신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거라 굳게 믿고 있다. '나'와 함께 간 별장에서 찾은 유스케라는 초등학생이 쓴 일기장이 중요한 단서가 되어 그곳에 살았던 유스케의 가족과 사야카와의 관계가 연결고리가 되어 잊어진 기억의 퍼즐을 하나씩 맞춰 나간다. 유스케의 눈으로 본 가족은 행복하기만 해야 할 어린 시절에 끔찍한 일을 경험했고, 그것을 보아온 어린 시절의 사야카는 자신의 기억을 본능적으로 의식 깊은 곳에 봉인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이 사야카가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는 이유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어쩌면 나 역시 낡은 그 집에 죽어 있는건 아닐까. 어린 시절에 죽은 내가, 그 집에서 줄곧 내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곳에 누워 있을 게 분명한 자신의 사체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모른 척하는 것일 뿐. (P.320)

이 책은 집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하루라는 짧은 시간동안 '나'와 사야카, 둘이서 찾아가는 과거를 다루고 있다. 이런 제약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가 쉽지 않을텐데, 나름대로의 완결성을 가지고 주제 의식을 전달하면서도 기묘한 분위기를 잘 유지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곳곳에 깔아놓은 복선도 잘 회수하는 편이고, 제약들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지루함을 이미 사망한 유스케의 일기를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킨 점도 좋았다. 사야카의 기억단절과 '옛날의 내가 죽은 집'이라는 제목의 이유를 알리는 반전은 다소 맥 빠진 느낌도 있지만, 심리적으로 한계에 이른 두 남녀의 상황을 묘사한 작가의 필력은 그 나름의 묘미가 충분히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동학대라는 사회현상과 결손된 기억을 연결시켜 가해자와 피해자, 양쪽의 시각에서 사건을 볼 수 있게 한 부분이 장점이었다. 부모의 지나친 기대가 아이를 병들게 한다는 것, 부모가 되기 위해 필요한 노력 등 여러가지를 생각하게끔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을 지우는 대신, 그 기억이 일어났던 곳에 봉인했던 사야카는 아픈 기억을 그저 모른 척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폭력과 두려움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것을 다시 자신의 자식에게 되풀이한다.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에 느낀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모든 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아이에게 입양이라는 단어도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오싹함이 감돌았던 초반의 분위기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안타까움으로 변하고 이를 건조하게 풀어가는 담담한 문체는 사야카가 외면할 수 밖에 없었던 상처를 독자에게 전해준다. 사실 추리소설로 느껴지지도 않았고 한정된 공간과 시간 속의 이야기는 어딘가 막힌 답답함을 느끼게 하기도 했지만, 괜찮은 구성력과 짜임새 있는 내용에 꽤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기도 하다.

P.S
나는 역시 나 이외에 다른 누구도 아니라는 걸 믿고, 앞으로도 살아갈 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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