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칼날 (2014) MOVIE

[스포일러 있음.]



2014년 4월 21일 관람.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을 인상깊게 읽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기대하던 작품이다. 직접 보고나니 내가 읽은 소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는데, 우리 정서에 맞게 각색했거나 2009년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2009년판과의 비교를 해보고 싶지만 감상하지 못한 관계로 원작 소설과의 차이점을 위주로 이야기해보려한다.

아쉬운 각색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쉽다. 불편한 분노가 느껴지는 것은 소설과 영화의 공통점이었지만 소설에서 느껴진 분노가 T.O.P였다면 영화에서의 그것은 그냥 커피였다. 특히 주역인 이상현(=정재형)의 부정(父精)과 심리묘사가 부족하게 느껴졌는데, 영화에서처럼 티격태격하는 평범한 부녀도 나쁘지 않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깊숙히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정도 들어갔으면 좋았을 것 같다. 범인을 추적하는 원작의 나가미네는 자신의 복수에 대해 몇 번이나 고뇌하고 방황하는데 상현에겐 그런 고민도, 그렇다고 범인을 쳐죽이겠다는 확고한 의지도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다. 물론 김철용(=김지혁)을 죽이고 놀란 모습과 조두식(=이주승)의 호의에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걸로는 부족하게 느껴진게 사실이고,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겠지만 상현의 태도가 조금은 어리바리하게 느껴진 점도 마음에 걸렸다. 장억관(=이성민)도 마찬가지. 피해자의 아버지에서 가해자가 된 상현을 쫓지만 한편으론 그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느끼는 모순된 심리를 너무 내적으로만 다룬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과거 과잉취조로 소년범이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내용은 분노와 책임감을 느낀 억관의 심정과 함께 주제와의 연관성은 있지만 사족처럼 느껴졌다. 자극적인 소재 탓인지 성적묘사나 잔인성이 심각하게 드러난 작품이 아님에도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것은 아쉽다. 사실 청소년들이 봐야 할 영화가 아닌가? 등급을 못 맞췄다면 차라리 조금 더 강하게 나갔으면 딥빡을 유도했을텐데 이 부분도 아쉬운 대목. 반면, 조금은 불필요할 수도 있는 펜션 여주인과의 교감을 제거한 것은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방황하는 주제
원작이 아버지가 느끼는 감정을 절제와 행동, 그리고 적절한 심리묘사로 표현했다면 상현은 울음과 절규를 통해 그 분노와 슬픔을 그대로 드러낸 것 같다. 전반적으로 담백하게 진행되며 읽는 이에게 판단을 맡긴 게 원작이었다면, 반찬까지 떠먹여준게 영화인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런 와중에 상현의 다소 어리석고 무모한 추격은 쉽게 공감하기 힘들었고, 고군분투보다는 안쓰러움이 더 컸다. 딸을 잃은 아버지인 상현을 분석하고 자신만의 재해석으로 표현한 정재영의 연기는 돋보였지만 지나칠 정도로 과잉된 감정은 극의 완성도를 떨어트린 것 같다. 또, 상현이 최초로 죽인 철용의 부모가 비중없이 스쳐지나간 것도 지적하고 싶다.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도 문제지만 그 부모들의 '우리 아이가 그럴 리가 없어'라는 심리 및 무조건적으로 옹호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행동들 역시 큰 문제다. 이 부분은 주제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된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데 수박 겉핥기 식으로 지나가버려 아까웠다.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기각됨.)으로 매스컴을 탔던 청솔학원에 관한 내용을 집어넣을게 아니라 저 부분을 자세히 다뤘으면 청소년 범죄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인식이 무겁게 다가왔을 것이다. 결국, 하나부터 열까지 관객들에게 알려주는듯한 모습은 먹먹함을 유발하기에는 충분했지만 주제 의식까지 확실히 표현하기엔 어려웠던 것 같다.

원작을 읽지 않았다면
좀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관조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독자에게 법의 불완전성과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원작과 비교를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영화 '방황하는 칼날'에서도 이런 문제를 지적하지만 후반부의 힘이 떨어지며 딜레마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느꼈다. 하지만 찢겨진 부정(父精)의 처절함을 뜨겁게 표현한 것은 한국적이었고, 그 느낌이 여과없이 전달되는 것도 장점이었다. 사적복수나 청소년 범죄보다는 소중한 딸을 잃은 아버지의 심경에 초점을 두고 사람으로서 죽음을 택하는 과정, 그리고 짐승 같은 놈들은 살아남는 세상을 지켜봐야한다는 억관의 대사가 결국 이 영화의 진정한 주제였던 것 같다.

P.S
범죄에 애 어른이 어딨어? 다 썅놈이지.

덧글

  • 전위대 2014/04/24 08:30 # 답글

    잘 봤습니다. 저는 원작을 읽지 않았지만 님이 말하신 것과 비슷한 문제점을 느꼈습니다. 확실히 주인공의 감정묘사가 너무 밋밋하더군요, 그와 별개로 조두식인가? 하는 마지막에 나온 애새끼 연기는 너무 어설픈 것 같았습니다.
  • NIZU 2014/04/24 14:54 #

    안녕하세요, 전위대 님. 방문 감사드립니다 :)
    상현과 억관이 대립하면서도 같은 마음을 품고 있는데 그 미묘한 심정의 일치를 조금 더 잘 표현해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두식은 버스에서 웃을 때는 약간 소름이 돋았지만 마지막 강릉 시내에서의 장면은 저도 아쉽더군요ㅠ
  • 전위대 2014/04/24 14:59 #

    !! 저도 그랬습니다. 버스에서 씨익 웃을 때는 호옹이?하는 느낌을 받았지만 강릉 시내의 대치전에서 우는 것도 아니고 건성도 아니고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에서 김이 다 빠집디다.
  • NIZU 2014/04/24 16:25 #

    저랑 같은 느낌을 받으셨군요. 배우분의 원래 표정 때문인지 뭔가 애매한 태도처럼 보였습니다. 총에 겨뉜 상황인 것을 감안해도 놀라서 우는 것도, 그렇다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어서 약간 어색했던 것 같아요ㅠ
  • jimbo 2014/04/24 11:41 # 답글

    저는 애아빠라 그런지, 감정이입되서 소설을 도저히 다 읽지 못하겠더군요...
    첫번째 놈 죽이는데서 멈췄습니다.
    영화도 마찮가지 일듯...
  • NIZU 2014/04/24 15:05 #

    안녕하세요, jimbo 님 :)
    먼저 방문 감사드립니다. 분노를 자극하는 소설 내의 묘사 탓인지, 저도 읽으면서 많이 떨리더군요. 영화에서도 그런 감정은 확실히 전해지지만 소설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한 장면을 넣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겠지만 그보다는 부족한 내적갈등과 감정과잉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감정의 폭발로 인해 한층 더 몰입할 수 있긴 했지만요.
    영화 역시 충분히 감정이입이 되었고 관객들을 분노케해서 앉아있기 불편하긴 했습니다ㅠ
  • 샬럿 2014/04/26 18:32 # 삭제 답글

    이 영화를 보고 온 지인이 가장 기억난다며 말해준 부분이 가해자 부모들의 뻔뻔한 태도였는데요, 그 부분에 가장 분노를 느꼈다며 감상평(의 전부인 것처럼)을 이야기한 것 보면, 확실히 주인공의 고뇌는 영화에 좀 덜 인상적으로 드러난 모양이에요> <;
  • NIZU 2014/04/27 15:48 #

    제가 생각했던 포인트가 영화에선 큰 비중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저울처럼 왔다갔다하는 주인공의 심리에 긴장감이 있었는데 그 부분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도 몰입도는 충분해서 시간은 잘 가더라구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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