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외전: 그들이 살아가는 법 BOOK

[스포일러 있음.]



악령이나 주술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초자연적인 힘으로 구하는 퇴마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퇴마록은 당시 센세이션이라고 할 만큼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무공이나 엑소시즘, 힌두교 및 이집트 신화 등 다양한 요소들이 혼합된 이야기와 미스테리적 분위기는 대단히 매력적이었고 나 역시 학창시절을 이 작품과 함께 보냈다. 하지만 초기작인 국내편을 읽을 당시엔 어려서 쉽게 지나쳤던 환빠 의혹이 머리가 굵어지며 의문스러운 느낌이 들었고, 갈수록 환단고기를 비롯한 각종 재야사학의 소재가 사용되며 내 안의 평가는 격하되었다. 소장판이 출간되면서 이런 비판을 수정하긴 했지만 서술이 부드러워졌을 뿐, 전체적인 논지 자체는 바뀌지 않아(중요한 소재라 바꾸기 힘들었으리란 생각은 들지만.) 관심이 식었지만 그래도 애정했던 작품의 신간인지라 읽어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세편 완결 이후 12년만의 신작으로 출간된 '그들이 살아가는 법'은 승희의 합류 전인 국내편 시절을 주로 다루고 있으며 일상의 소소함을 중심으로 내용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외전은 부제와 동일한 '그들이 살아가는 법'을 포함, '보이지 않는 적', '준후의 학교 기행', '짐 들어 주는 일', '생령 살인', 총 5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었고, '짐 들어 주는 일'과 '생령 살인'이 인상적이었다. '짐 들어 주는 일'은 자신의 짐을 들어달라는 핑계로 승희가 애정공세를 펼치지만 현암은 냉랭한 태도를 보이고, 결국 화가 난 승희는 자신은 짐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말과 함께 먼저 돌아가 버리는 내용이다. 남겨진 현암이 모랫바닥에 자신의 마음을 쓴 뒤 얼른 지워버리는 장면은 자신이 퇴마사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운명 때문에 그녀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전해져 씁쓸했다. '생령 살인'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캐릭터인 주기선생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처음엔 현암을 질투하는 조연 정도의 비중이었던 그가 사실 속내는 정의로운 인물이고, 내심 현암을 인정하는 츤데레라는 건 다 아는 사실. 백호에게 단독으로 의뢰를 받아 움직이는 주기선생 나름의 고뇌와 철학, 능력자들을 모아 TF팀을 만드려는 프로젝트를 수정할 수 밖에 없는 백호의 고민이 주된 내용이었다.

화려한 액션은 없지만 그들의 소소한 사생활을 엿보는 듯한 느낌의 외전은 의외의 재미가 있었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힘 때문에 겪게 되는 비일상과 일상의 고초, 그리고 본편에선 볼 수 없었던 잔잔하고 웃픈(?) 이야기들은 디저트로서 훌륭했다. 다만, 12년이라는 세월동안 작가의 글쓰는 성향이나 문체가 바뀐 것은 물론이고 본편의 설정과 충돌하는 부분이 더러 있었던 점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찾아보니 3부작의 영화제작 소식이 있던데 설마 98년작 만큼 흑역사가 되진 않겠지…

P.S
세상에 나보다 착한 놈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제기랄!

덧글

  • ㅇㅇ 2014/04/25 04:28 # 삭제 답글

    주기선생ㅠㅠ 혼세편은 주기선생이 다했잖아여ㅠㅠ
    영화화를 또 한답니까? 지난 흑역사를 타산지석삼아 제대로 좀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 NIZU 2014/04/25 05:36 #

    주역 4인방을 제외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었습니다ㅠ 특히 준후에게 십이지신술 요결을 넘겨주고 총알을 막아서는 마지막은 무척 기억에 남네요. 성격도 속물적이고 술법 역시 어딘가 사파적이어서 더 좋아했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형태로든 원작자가 참여한다고 하니 전보다는 나은 결과물을 보여줄 것 같은데 그 범위와 권한이 어디까지냐에 따라 완성도도 달라질 것 같아요. 잘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정호찬 2014/04/25 09:08 # 답글

    1. 아아 회덕후 독거노인 박 신부님. ㅠ.ㅠ

    2. 현암은 TV도 못볼 정도로 감각이 예민해졌다면서 합성 조미료 팍팍 들어간 라면은 어떻게 먹는건지. 그리고 국내편에선 TV도 보고 게임도 하는 장면이 나오던데;;

    3. 준후랑 같은 반 아이들이 몹이라는 단어를 쓰던데 이 말은 최소한 극중 배경인 90년대 초중반까진 안쓰던 말인데 말이죠.

    제가 본 명대사: 신부님 차 돌립시다(...)
  • NIZU 2014/04/25 16:15 #

    안녕하세요, 정호찬 님. 방문 감사드립니다 :)
    회 좋아하는 부분이 참 재미있더군요. 그는 좋은 회덕후였습니다;; 말씀하신대로 국내편에 수록된 단편엔 현암이 준후와 게임하는 장면도 있어 지금 생각해보면 당황스럽습니다. 자잘한 부분은 신경쓰지 않는 편인데 의외로 설정충돌이 꽤 있더군요. 언급하신 몹이란 말도 책을 읽을 땐 별 생각없이 넘어갔는데 덧글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ㅎㅎ
  • 백우선 2014/04/25 14:29 # 답글

    불사신의 뺨은 사정없이 후려치면서 개는 무섭다던가 하는 신부님이나 돌부처 모드 현암 상대로 영원히 고통받는 승희라거나 열폭으로 점철된 상준이횽의 모습이 보는 내내 즐겁게 해준 책었어요. 최초! 로 퇴마록 영화화 해주는거 잘 뽑아주기만을 빌어봅니다 ㅜㅜ
  • NIZU 2014/04/25 16:13 #

    안녕하세요, 백우선 님. 먼저 방문 감사드립니다 :)
    승희와 주기선생을 좋아해서인지 이 둘이 메인으로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외전에서 두 사람이 이어지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달콤한 이야기가 있을 줄 알았는데 꿈도 희망도 없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상준이형은 승희랑 파장이 안 맞아 기절하는 등 여러모로 고생했네요ㅠ 솔직히 영화에는 큰 기대를 품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무조건 보러 가야겠습니다.
  • 우왕 2014/04/25 19:36 # 삭제 답글

    밸리에서 보고 반가운 맘에 들어왔어요. 댓글을 읽다보니 좋은 정보도 많이 얻어가네요.. 설정 충돌이라니... 생각도 못했어요.ㅋㅋ. 외전 나온다했을때 초기 예약판매 넘버링 책을 받을 정도로 퇴마록을 좋아해요 >_< 지금은 좀 시들었지만..ㅋㅋ 영원히 고통받는 승희..엉엉..ㅠ_ㅠ 처음 읽었을 땐 현암을 아저씨라 부를 만큼 꼬꼬마 였는데..이젠 제 나이가 현암을 넘어섰다는...아악!!! 어쨌거나.. 좋은 포스팅 읽고 갑니다. 이렇게 흔적 남겨용 ^~^
  • NIZU 2014/04/25 20:32 #

    반갑습니다 :) 책을 보며 별 생각없이 지나가는 부분이 많았는데 고수분들 덕에 많이 배우네요. 저도 해설집까지 구입할 정도로 좋아했는데 이사오면서 버렸는지 안 보이네요ㅠ 그동안 고생했으니 승희도 보답 좀 받아야 할텐데 본편이 완결되어서 아쉽네요. 외전이 하나 더 나온다는 소식도 있던데 여기선 러브러브한 에피소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아마 안되겠지만요ㅠ)
  • 2014/06/26 22:1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6/27 18:5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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