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바다로 간 산적 (2014) MOVIE

[스포일러 있음.]



2014년 8월 13일 관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상당히 유쾌하게 봤다. 대작들 속에서 개봉한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은 가장 기대치가 낮았지만 그 때문일까, 의외로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사실 대놓고 여름철을 노린듯한 분위기와 코미디를 좋아하는 한국관객들의 특성상 다크호스가 되리라는 예상은 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물론 억지스러운 상황 설정과 인물 등으로 호오가 나뉘고 있지만 킬링타임용 오락영화로서는 상당히 괜찮았다고 평하고 싶다.

명확한 지향점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의 지향점은 분명하다. 관객에게 웃음을 주겠다는 것이다. '조선 건국과 국새의 부재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의문점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현실을 기반으로 작가적 상상력을 입힌 팩션(faction)이다. 옥새를 명나라에서 조선으로 가져오는 도중 고래가 삼켜버렸다는 설정이 얼개인 '해적'은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캐릭터 구축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서사는 고래가 옥새를 삼켜 해적과 산적과 조선군이 고래를 잡으러 간다는 것 외엔 찾아볼 수 없고, 캐릭터 역시 장사정(=김남길)-모흥갑(=김태우), 여월(=손예진)-소마(=이경영)의 대립관계를 통한 긴장감은 유도하고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지적 수준을 낮춘 인물들로 웃음을 유발할 뿐이다. 때문에 내러티브나 인물 해석적인 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긴 힘들다. 하지만 재미있었다. 사실 '해적'이 주는 웃음은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1차원적인 개그는 뻔뻔하고 유치해서 빵빵 터지는 장면은 없었다. 그럼에도 개그가 터지는 타이밍이나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방법은 흥미로웠다. 능글맞은 장사정이나 작품 전체를 캐리하는 철봉(=유해진), 조연이지만 큰 존재감을 주는 스님(=박철민), 한상질(=오달수), 그리고 의외의 감초역을 한 박모(=정성화)까지… 취향탓에 터지진 않았지만 피식피식 새어나오는 요상한 웃음은 뻔뻔함을 기조로 한 '해적'식 개그의 매력이었다.

문제적 관습
가장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CG도, 고증도, 날아간 개연성도 아니었다. 여말선초의 역사적 배경만을 가져왔을 뿐 스타일상으로는 퓨전 사극에 가깝고, 그렇게 이해했기 때문에 세세한 문제는 아무래도 좋았다. 허나 팩션(faction)과 함께 요즘 트렌드가 되어버린 백성을 통한 공감 유도는 거슬렸다. 물론 부정한 관리에 짓밟히는 민초들의 고통을 묘사하고 거기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백성의 의미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보면 꼭 넣어야했나 싶다. 작품 초반, '해적'에 눈길이 갔던 이유는 조선 개국 자체를 문제로 삼고, 그 정당성을 명나라의 승인을 통해 합리화시키려한 사실을 드러내며 장사정이 산적이 된 까닭을 설명한데에 있었다. 고려의 장수였던 장사정이 위화도 회군을 반대하는 부분은 납득이 가나 백성을 언급하며 조선을 부정하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어찌됐건 백성들을 삥뜯는 산적이 된 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한낱 미물인 고래도 자기 새끼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데 어찌 왕이라는 자가 그깟 명나라가 준 국새를 찾자고 백성을 희생시킨단 말이오."는 대사는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는 대충 알겠으나 '해적' 전체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무척 뜬금없었다. 이 부분을 진지하고 깊이있게 다루지 않아서 언급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나, 코미디 장르의 영화에서까지 가뜩이나 힘든 백성을 등판시켜야 할 이유 역시 모르겠다. 어느샌가 사극에서 관습처럼 되어버린 이 코드는 너무 쉽게 소모되고 있어 우려스럽고,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서 만큼은 개연성을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생각을 비우면
웃자고 만든 이야기에 정색한 느낌도 들지만 어쨌거나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한 분위기를 이어나간 것은 장점이었다. 유해진의 개인기에 너무 의존한다는 평은 동의하지만 개인적으로 나쁘지만은 않았고, 흑묘(=설리) 역시 극중 흐름을 종종 끊어먹지만 중요 배역이 아니어서 그리 신경쓰이진 않았다. 이를 비롯해 스토리의 부실함을 이야기하면 상당히 많은 부분을 따질 수 있겠지만, 코미디 활극이라는 부분을 감안하고 너그럽게 본다면 즐길 요소는 충분하지 않을까. 적어도 나에게는 유쾌한 즐거움을 준 영화였다.

P.S
남아달라 애원하면 머물 것이고, 따라오겠다하면 거둬주겠다.

덧글

  • 베른카스텔 2014/09/09 15:39 # 답글

    이거 의외로 평이 좋아서 놀랐어요. 망할 줄 알았는데..
  • NIZU 2014/09/09 19:36 #

    올 여름 개봉한 한국영화 중 가장 기대치가 낮았고 저 역시 망할 줄 알았습니다. 헌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론 명량이나 군도보다 즐겁게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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