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인 소녀 BOOK

[스포일러 있음.]



'내가 죽인 소녀'는 전작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의 탐정 사와자키가 다시 등장하는 두 번째 작품으로, 역시 고전적인 하드보일드를 추구하는 작품이었다. 일본 대중소설 작가로는 가장 큰 영예인 나오키상(102회)를 수상한 만큼, 하라 료의 입지를 다진 이 소설은 전작으로부터 1년 반 만에 발표한 작품으로 집필기간이 긴 작가의 스타일상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와 함께 쓴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그래서인지 사건의 흐름은 등장인물의 행동으로 연결되고 탐정과 눈높이를 맞춰 독자가 주인공의 시선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방식은 전작과 유사하다. 특유의 건조함마저도.

여전히 도쿄 도심의 그늘에 위치한 작은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사와자키. 와타나베 탐정사무소라는 간판처럼 처음에는 둘이 시작한 사무소였지만, 와타나베는 대량의 마약을 폭력조직으로부터 빼돌리고 현재 도피 중이다. 이따금 소식을 적은 전단지를 종이비행기로 접어 근황을 전할 뿐… 그러던 어느 날, 사와자키는 행방불명된 가족을 찾고 싶다는 한 통의 의뢰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의뢰인이라고 생각했던 인물은 사와자키를 유괴범의 공범이라고 여기고, 6천만 엔이라는 몸값을 안겨주며 딸을 돌려달라고 하소연한다. 이미 잠복해있던 형사들에게 붙잡힌 사와자키는 집요한 취조를 당하고, 이는 유괴범이 설치한 함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가까스로 누명을 벗은 사와자키는 유괴범의 지목으로 몸값의 전달책 역할을 맡고 되나 전달도중, 불량배에게 폭행을 당하고 몸값은 사라진다. 한편, 유괴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인 소녀는 아직도 풀려나지 않은 상황에서 사와자키는 소녀의 외삼촌에게 어떤 의뢰를 받고, 어느 폐공장의 하수구에서 심하게 부패한 소녀의 사체를 발견한다.

텔레비전 카메라를 향해 여성 리포터가 우산과 마이크를 두 손에 들고 조의를 표하면 이런 표정이 된다는 듯한 얼굴과 조의를 표하면 이런 목소리가 된다는 듯한 음성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뉴스에 희로애락을 담는 것은 이 나라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뉴스가 신선하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서양의 텔레비전 뉴스는 감정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다는 듯이 빠른 말투로 퍼붓는다. 우느냐 웃느냐는 받아들이는 쪽에서 알아서 하라는 태도였다. 둘다 작위적이지만 후자가 약간 합리적이고 뉴스의 양도 확실히 많다. (P.354~355)

1989년에 출간되어 한국에는 2009년에 소개된 이 작품은 20여년 전에 쓰인 책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고 흥미진진했다. 물론, 냉담한 문체나 작품 전반의 성향은 고전 하드보일드에 가깝지만 사람을 쥐락펴락하는 재주는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게 느껴졌다. 졸지에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사야카의 유괴범으로 몰린 사와자키는 경찰의 의심을 한 몸에 안은 채, 정체를 알 수 없는 유괴범을 추적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가 미행하는 골목길들에 대한 묘사는 굉장히 훌륭하게 느껴졌다. 작가가 가공했다는 지명은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충실하게 느껴졌고 현실감있었다. 또한, 가장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캐릭터 간의 대사는 불필요하게 장황하지 않고 간결하면서도 핵심만을 전달하는 짧은 대화여서 일품이었다. 이야기의 흐름 역시 독자들이 따라올 수 있게끔 소위 말하는 '밀당'을 시전하며 사건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와자키와 같은 시선에서 사건을 쫓다보면 독자의 추리는 어느새 손을 놓아버리게 된다. 추리소설의 가장 큰 묘미인 작가와의 치열한 두뇌싸움은 결여되어 있지만, 덕분에 사건 해결만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리는 빠른 호흡과 우직함, 놀라운 반전없이도 작품에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반면, 아쉬웠던 점은 20여년이라는 세월이 주는 괴리감이었다. 예를 들면 사와자키가 연락을 위해 공중전화를 찾아 해맨다거나 하는… 하지만, 중요한 전화를 받지 못하거나 음성 서비스를 늦게 확인함에서 오는 시간차가 사건을 수렁으로 빠트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오히려 효과적인 장치로 사용된 면도 있었다. 요즘처럼 과학수사가 발달하지 못한 시기에 쓰여진 작품이라 지금 읽기엔 다소 답답한 느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시대적 배경에서 오는 발로 뛰는 수사와 기교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문장기법이 어우러지며 내 취향을 자극했다. 때문에 '내가 죽인 소녀'와 마찬가지로 기나긴 세월을 넘어 작년에야 겨우 정식출간된 '안녕, 긴 잠이여' 역시 기대된다.

P.S
죽음의 의식은 죽은 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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