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1970 (2014) MOVIE

[스포일러 있음.]



2015년 1월 29일 관람.
'강남 1970'은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에 이은 유하 감독의 이른바 거리 3부작의 완결판이라고 한다. 세 편의 영화의 공통적인 테마는 욕망과 배신인데, 이를 허허벌판이었던 70년대 강남땅을 둘러싼 이권 다툼과 함께 그렸다는 것에 호기심이 일어 관람하였다.

남서울개발계획
'강남 1970'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이 영화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먼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유하 감독은 "그 당시 땅 얘기를 통해 돈의 가치가 어떤 도덕적 가치나 민주적 가치보다 우월한 세상, 뒤틀린 자본주의 세상에 대해 역으로 반성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모티브로 삼았다"고 말했는데 이 모티브가 된 책이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이다. 당시 서울시 기획관리관이었던 손정목 전 교수가 쓴 이 책에 따르면 강남 개발은 (당시)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 등이 주도한 '박정희 대선자금 프로젝트'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계기로 영동지역의 400만 평을 구획정리사업지구로 지정하는데 영동 제1구획 정리가 지금의 서초구고, 제2구획 정리로 만들어진 것이 강남구이다. 구획정리로 땅을 강제로 빼앗는 가운데 본격적인 토지 매입이 시작되는데 땅이 확보되자 서울시는 1970년 남서울개발계획을 발표하고 그 영향으로 땅값이 몇 백 배로 뛰어오른다. 그리고 천문학적인 금액의 대선자금이 청와대에 상납되는 것이 '남서울개발계획'의 대략적인 개요라 할 수 있다.

애매해진 포지션
어쨌든 강남은 그 자체가 돈이었고 모든 이들에게 환상을 심어준 신기루 같은 것이었나 보다. 그리고 호적도 제대로 없는 고아인 종대(=이민호)와 용기(=김래원)이 이런 환상과 마주한다. 작품의 흐름상 주인공은 종대인 것이 분명하지만 개인적으론 용기의 역할에 좀 더 주목하고 싶었다. 용기야 말로 유하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천민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캐릭터인데, 돈과 땅을 위해 변절과 배신을 일삼는 그의 면모는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70년대의 강남이 상당히 괜찮은 배경적 설정이었던 반면, 스토리의 디테일과 전달력에 아쉬움이 남았고 이는 용기의 애매한 포지션으로 그대로 반영된 것 같았다. 그가 타락하는 과정을 강남 개발과 엮어 입체적으로 묘사했다면 전체적인 완성도가 올라가지 않았을까 싶다. 시나리오가 부실한 것도 아니고 캐릭터의 매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영화적 완성도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지만 잘 만든 영화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주제의식에 확고함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르물로의 돌변
두 사람은 같이 부대끼며 자라서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헤어지게 되나 마침내 다시 만난다. 그 후 과거의 우정을 재현하는 듯 하나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마는데 결말까지의 과정에서 종대와 용기는 매우 비슷한 길을 걷는다. 종대가 길수(=정진영)를 만났다는 사실이(물론 용기도 만나긴 한다.) 두 사람의 다른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두 사람의 최후는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이런 기구한 운명을 정치권력과 돈과 땅, 그리고 폭력에 녹여내기에는 아무래도 조금 어려웠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어딘가 붕 뜨면서 맥략이 맞지 않는 듯한 느낌도 들었는데 여기에는 어른의 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종대와 용기가 부동산 투기에 뛰어드는 과정을 그린 전반부는 그래도 천민자본주의에 대한 풍자가 느껴졌는데, 이들이 본격적으로 조직에 몸을 담고나서 부터는 땅을 둘러싼 권력과 폭력의 욕망만 표현해 의아했다. 결국, 원래 말하고 싶었(을거라 생각되는)던 지금까지도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권력과 부동산을 둘러싼 구조의 뿌리를 매듭짖지 못한 채 단순한 장르물로 돌변한 것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후의 이야기는 길수의 죽음을 시작으로 용기, 종대를 비롯 남겨진 선혜(=설현)까지 속전속결로 처리하며 용도 폐기로 마무리 짓는다. 처음부터 종대와 용기 따위가 넘볼 수 있는 돈과 땅이 아닌 것을 권력 암투에서 승리한 서태곤(=유승목)의 연설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의 수확이었다.

P.S
내 땅 한번 원 없이 만들어 볼거야.

덧글

  • 베른카스텔 2015/02/15 00:03 # 답글

    이걸 보고 왔던 친구가.. 굉장히 재미가 없었다면서.. (먼산)
  • NIZU 2015/02/15 06:54 #

    저도 썩 재미있진 않더군요.
    유하 감독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는데 조금 실망이었습니다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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