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외전: 마음의 칼 BOOK

[스포일러 있음.]



퇴마록 본편을 이루는 굵은 줄기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모은 단편집 '그들이 살아가는 법'에 이은 두번째 외전, '마음의 칼'이 출간되어 읽어보았다. '그들의 살아가는 법'이 퇴마사들의 숨겨진 이야기였다면, '마음의 칼'은 본편에 등장했던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특히 본편을 읽으며 궁금했던 블랙서클의 실체나 현정의 과거, 더글라스 형사의 고뇌와 갈등 등을 읽으니 개정판으로 재출간된 퇴마록 본편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마음의 칼'은 총 4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고반다와 바바지, 그리고 마스터의 이야기를 다룬 '대성인의 죽음'과 비구니가 되어야만 했던 현정의 속사정을 다룬 '마음의 칼', 세계편에 등장했던 더글러스 형사의 활약상(?)을 그린 '죽었다고 지옥을 아는가'와 혼세편 이후의 시점에서 퇴마사와 관련된 인물들이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일상을 다룬 '1997년 12월 25일'이 그것이었다.

종교만이 아니지요. 환경, 가치, 이념, 소속감 그 어떤 것만으로도 인간은 누구보다 쉽게 갈라설 수 있는 존재지요. 또 원래 그것이 자연적인 것이기도 하고요. 용납할 수 없는 자들은, 물론 소수여야겠지만, 항상 존재하는 거예요. (P.29)

본편을 읽은지가 까마득한데 퇴마사가 아닌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이번 외전은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읽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첫번째 이야기인 '대성인의 죽음'은 특히 읽기 힘들었는데 고반다와 바바지, 마스터와의 악연의 시초를 다룬 이야기는 처음엔 버거웠지만 압도적인 규모에 이내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살아가는 법'의 스케일에 실망한 독자들이라면 이 에피소드만으로도 충분히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인도와 파키스탄의 종교전쟁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녹여 잘못된 신념이 인간을 어떻게 변하게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와 블랙서클이 등장하는 세계편 뿐만 아니라, 혼세편의 '홍수'에 나오는 에머랄드 타블렛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었다.

이 책의 부재이기도 한 '마음의 칼'은 현정이 무련 비구니가 되어가는 과정을 현재와 교차해서 보여주며 그녀의 내적 갈등을 다루고 있었다. 자신의 영적인 힘 때문인지, 아니면 지독한 우연으로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현정의 눈 앞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그녀는 마음의 칼의 존재 여부를 고민하게 된다. 그에 대한 비교군으로 도지 무당에게 받은 청홍검이 등장하는데, 그 검의 진위를 밝히는 게 무의미하듯이 현정이 휘두른 마음의 칼 역시 그 실체가 무의미하다는 깨달음에 대한 내용이었다.

'죽었다고 지옥을 아는가'는 가장 재미있게 읽은 단편으로 더글러스 형사를 중심으로 이야기 흐름이 돌아가되 현암과 승희, 이반 교수의 활약상을 볼 수 있어서 더욱 즐거웠다. 귀신이긴 하지만 진짜 지옥을 알지는 못하는 아이린과 현암이 나누는 대화는 여러가지로 의미하는 바가 컸다. 지옥에서 벌을 주는 것은 과연 악마일까, 진짜 지옥은 무엇이고 지옥이 있따면 지옥에서 벌을 주는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퇴마사들의 생사여부가 일부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시점에서 그들과 관련된 인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인 '1997년 12월 25일' 역시 훈훈함이 느껴졌다. 마치 해후하듯이 조력자들의 모습을 비춤과 동시에 그들이 등장했던 본편의 에피소드들이 스치듯 떠오르는 감각이 참 좋았다. 이런게 외전이라는 느낌일까?

'그들이 살아가는 법'이 퇴마사 4인의 뒷 이야기였다면, '마음의 칼'은 그들이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마음의 칼'은 스케일이 커진 반면, 퇴마사들의 등장이 적은 아쉬움이 있었다. 이런 점을 달래줄 세번째 외전을 기다리며 본편의 개정판을 읽어볼까 한다.

P.S
죽어서 더 빛을 난 사람도 많잖아요. 죽음은 무서운 게 아니라… 반드시 마주해야 하는 슬픔, 아쉬움이 아닐까요? 그래야 삶이 충실해질 것 같아요. 그게 며칠이건, 몇 년이건? 영원이건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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