꾿빠이, 이상 BOOK

[스포일러 있음.]



'꾿빠이, 이상'은 '한국 현대시 최고의 실험적 모더니스트이자 한국 시사 최고의 아방가르드 시인'(김승희, 「이상 시 생산 연구」, 김윤식 편저, 
이상 문학 전집 제4권)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상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데드마스크', '잃어버린 꽃', '새', 총 3편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서로 다른 3명의 화자가 이상이 남긴 흔적을 추적해가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첫번째 이야기 '데드마스크'는 실제로 이상이 죽기 전 당시 서양화가 길진섭이 이상의 데드마스크를 떴다는 소문을 토대로 그 소재와 진위 여부를 둘러싼 사건을 다룬 내용으로, 우연히 이 사건에 말려들게 된 기자 김연(화)이 화자로 등장한다. 두번째 이야기 '잃어버린 꽃'은 무명 시인이자 아마추어 이상 연구가인 서혁민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로, 죽을 때까지 이상의 시를 연구하며 그의 삶을 모방하는 서혁민은 '이상을 찾아서'라는 수기 한 편과 이상의 작법을 모방해 쓴 시 '오감도 시 제16호'를 남기고 이상이 죽은 병원에서 음독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세번째 이야기 '새'는 '오감도 시 제16호'의 진위 여부를 둘러싼 논쟁을 다룬 내용으로 자신이 발표한 이상에 관한 논문이 엉터리라는 비난을 받고 절망에 빠진 재미교포 이상 연구가 피터 주의 출생의 비밀과 관련된 정체성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니요. 중요한 것은 가짜냐 진짜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말입니다. 진위와는 무관하게 모든 정황이 진짜라면 진짜인 것이고 모든 정황이 가짜라면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지만, 그 당시 저는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우스운 얘기지만, 저는 이상의 데드마스크에 빗대어 그 사랑만이 진짜라고 강변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 사랑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그 여자는 다른 남자의 아내였으니까요. 그냥 우스운 얘기입니다."
이상에 대한 사전지식이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세상 모든 만물이 진실과 거짓, 혹은 진짜와 가짜라는 이분법적인 잣대에 의해 구분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허(嘘)와 실(實)을 가르는 경계는 또 무엇인가? 라는 명제를 던지고 풀어가는 과정이 인상깊었다. 작가는 소설에서 어떤 존재의 진위여부를 판가름하는 것은 믿음의 영역일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한 이 작품처럼 우리가 믿는 것은 진실이 될 것이고, 믿지 않는 것은 거짓이 될거라는 내용은 이상의 삶과 어우러지며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태어나자 마자 몰락한 양반인 백부의 집으로 입양된 이상은 유교적인 가치관을 주입받으며 살았다. 이러한 성장배경 탓에 이상은 현대화된 도시인의 삶을 살았지만 남존여비, 가부장적인 관념 등 보수적인 사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고, 이를 계기로 서구화된 도쿄의 지식과 사상을 머리에 담기 위해 유학을 떠난다.(도쿄에 간 직후 실망하지만.) 말년에 이상이 도쿄에서 김기림에게 쓴 편지의 내용에는 "암만해도 나는 19세기와 20세기 틈바구니에 끼여 졸도하려 드는 무뢰한인 모양이요."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렇듯 경계에 서있는 이상처럼 진짜와 가짜, 혹은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한국과 미국의 경계인인 피터 주를 등장시켜 풀어간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오랜 시간동안 공들여 쓴 흔적이 역력할 만큼 이상에 대한 연구 또한 면밀하고 섬세할 뿐만 아니라, 실증이 부족한 부분에 개입하는 작가의 상상력과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작품 속의 내용은 이상을 향한 작가의 찬사가 아닐까 싶다.

P.S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

덧글

  • 2016/04/27 17:2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NIZU 2016/04/27 17:59 # 답글

    └ 안녕하세요, 비공개 님.
    먼저 방문 감사드리고 메일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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